THE NEW VALUE FRONTIER

이나모리 재단

이나모리 재단

이나모리 재단의 발자취

1984년 (52세)재단법인 이나모리 재단 설립
1985년(53세) 제1회 이나모리 재단 연구조성금 증정식 개최
제1회 교토상 시상식 개최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전하, 유리코 비전하(1992)
스웨덴 실비아 왕비 임석
노벨재단에 「교토상 창설기념 특별상」을 수여
1990년(58세)교토상 수상자의 천황, 황후 양폐하 알현 개시(2003년까지)
1993년(61세)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전하, 히사코 비전하, 교토상 시상식 임석(2002년까지)
1997년(65세)연구조성금 수급자를 회원으로 하는 교류조직 「세이와 스콜라스 소사이어티」 발족
2001년(69세)도쿄에서 「미일 리더십 회의」 개최
교토에서 교토상 수상자에 의한 「고교 특별수업」 개시
2002년(70세)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교토상 심포지엄」(Kyoto Prize Symposium) 개시
미국 전략국제문제 연구소(CSIS) 에서 공동으로 「앱샤이어·이나모리 리더십 아카데미(AILA)」를 설립
2003년(71세)이나모리 펠로 제1기생을 AILA에 파견
다카마도노미야 비 히사코 전하, 이나모리 재단 명예총재에 취임
2004년(72세)제1회 CSIS 포럼 개최
교토상 20주년 기념 포럼 「과학과 인류의 미래 - 과학기술은 인류사회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는가 -」 개최
2005년(73세)교토상 수상자와 대학생의 직접 대화를 목적으로 한 「학생 포럼」 개시
2006년(74세)교토상 수상자와 초·중학생의 교류를 목적으로 한 「키즈 이벤트」 개시
2007년(75세)미국의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에 기부하여 「윤리와 예지를 위한 이나모리 국제센터」 설립을 지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의 방일기념 심포지엄을 마이니치 신문사와 공동주최
2008년(76세)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학이 제1회 이나모리 윤리상 시상식 개최
교토대학에 「이나모리 재단 기념관」 기증
2009년(77세)규슈대학에 「이나모리 재단 기념관」 기증
2011년(79세)재단법인 이나모리 재단에서 공익재단법인 이나모리 재단으로 조직 명칭 변경
동일본 대지진 부흥 볼런티어 단체로의 조성을 실시
2012년(80세)오사카대학에 이나모리 재단 기부 강좌 「글로벌한 공공윤리와 소셜 이노베이션」 설치
2014년(82세)앨 고어 전 미국 부대통령의 재단설립 30주년 기념강연회 「푸른 지구는 누구의 것 - 지구환경과 인류의 지속 가능성 - 」 개최
교토상 수상자 가고시마 강연회를 후원 제1회 교토대학 - 이나모리 재단 합동 교토상 심포지엄(KUIP)을 개최
2016년 (84세)"존 노이마이어 「교토상」 수상 기념 함부르크 발레단 일본공연에 특별협찬
마쓰야마 발레단 “신 「백조의 호수」 전막” 교토공연을 개최(재단설립 30주년 기념사업) "
2017년 (85세)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Kyoto Prize at Oxford」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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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재단의 설립(1984년)

이나모리 재단의 설립(1984년)

사람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최고의 행위이다

이나모리는 젊을 때부터 기술자, 경영자로서 진지하게 일에 임하여, 교세라의 발전과 함께, 상당한 개인적 자산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나모리에게는, 「개인의 자산은 사회로부터 일시적으로 위탁받은 것이므로, 언젠가는 사회에 되돌려 주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 스스로가 파인세라믹스의 연구 개발로 다양한 상을 받는 가운데, 「자신이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측이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후 더욱 깊은 생각을 한 이나모리는, 자기의 인생관을 구체화하여, 지금까지 자신을 길러준 사회에 답례하기 위해, 1984년 4월, 52세 때에, 사재 약 200억엔을 들여서 이나모리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이나모리 재단은 다음 세가지 사업을 통해서, 국제 상호 이해의 증진에 노력하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 1. 「교토상」 표창 사업
  • 2. 연구조성 사업
  • 3. 사회계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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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상의

교토 상의

교토 상의 이념

「저는 쇼와34년(1959년)에 교세라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세라믹스 기술자로서, 일렉트로닉스 세라믹스, 엔지니어링 세라믹스, 스트럭처 세라믹스 등, 다양한 세라믹 재료의 개발에 노력해, 뉴 세라믹스, 파인 세라믹스의 시대라고 불리는 오늘날을 구축하는데, 큰 공헌을 다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창립 25주년, 4분의 1세기가 경과한 오늘, 우리들은 지금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력의 성과와, 동시에 신의 인도가 있어, 연간 매출액 2,300억엔, 세전이익 530억엔(1) 이라는 기업으로까지 발전을 해 왔습니다. 이에 부터, 전부터 저의 인생관인 「사람을 위해, 세상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최고의 행위이다」라는 이념을 근거로, 제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교세라 주식회사의 주식 및 현금, 합계 약200억엔(2) 상당을 갹출하여, 인류 과학의 발전, 문명의 발전, 또한 정신적인 심화, 고양의 면에서 현저하게 공헌한 사람들에 대해서, 교토상을 증정해, 인류의 진보, 발전에 조금이라도 공헌하고 싶다고 생각해, 이에 교토상을 창설했습니다.

이 교토상을 수상하게 될 자격자는, 우리들의 교세라가 지금까지 해 온 것과 같이, 겸허하게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길을 구명하는 노력을 하며, 자신을 알고, 그걸 위해 위대한 것에 대해 경외심을 갖도록 하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그 업적이 세계의 문명, 과학, 정신적 심화를 위해서, 큰 공헌을 한 사람리디 않으면 안 됩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자신이 노력한 그 결과과 진정 인류를 행복하게 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됩니다.

이 교토상을 창설하는 데에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서두에 말한 제 자신의 인생관에 있듯이, 이 세상에 있어서의 인류 최고 행위는, 「사람을 위해, 세상을 위해서 진력한다」라는 것에 있어서, 오늘날까지 저를 키워 준 인류 및 세계를 위해 답례를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남몰래 노력하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있어, 진정으로 기뻐할 만한 상이 세상에 너무나 적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남다른 노력을 해, 인류의 과학, 문명, 정신적 심화라는 면에서 현저하게 공헌한 사람을 표창하고, 이후 그 방면에서 더 발전할 수 있는 자극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과학의 발전과 인류의 정신적 심화의 밸런스가 잡혀야, 비로소 안정된 것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현재, 과학문명은 점점 더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만, 인류의 정신면에 있어서의 연구는, 과학에 대해서 크게 뒤처지고 있습니다. 사물에는, 음과 양, 암과 명처럼, 플러스와 마이너스라는 반드시 이면적인 세계가 펼쳐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 양면이 밸런스 좋게 해명되어, 발전해야만 토탈의 안정을 얻을 수 있으며, 어느 한쪽 방향만의 발전, 비대화는, 우주의 밸런스를 무너뜨려, 인류의 불행으로 이어져 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이 교토상이 앞으로 이 양면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새로운 철학적 패러다임의 구축을 촉진하는 조금의 자극제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없겠습니다.

쇼와59년(1984년) 4월 12일 이 나 모 리 가 즈 오

  • (1) 1984년 3월말의 결산 금액
  • (2) 1984년 재단 설립 당시의 금액

인류의 미래는, 과학의 발전과 인류의 정신적 심화의 밸런스가 잡혀서, 비로소 안정된 것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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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상의 창설

교토 상의 창설

교토상이란

  • 1. 과학이나 문명의 발전, 또한 인류의 정신적 심화·고양에 현저하게 공헌한 분들의 공적을 기리는 국제상입니다.
  • 2. 매년, 첨단기술부문, 기초과학부문, 사상·예술부문의 3부문에서 수여됩니다.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사상·예술도 더한 3부문으로 한 것이, 교토 상의 큰 특징입니다.
  • 3. 후보자는, 이나모리 재단이 해마다 신임하는 국내외의 지식인들로부터 추천됩니다.
    그리고 전형은, 각 부문의 전문위원회·심사위원회 및 교토상위원회의 3단계로 이루어진 교토상 심사기관에 의해서 행해집니다.
  • 4. 수상자는 매년 6월에 결정하고, 시상식 및 관련 행사는 매년 11월에 교토에서 개최됩니다.
  • 5. 수상자에게는 디플로마, 교토상 메달 및 상 하나당 상금 1억엔이 전달됩니다.

수상 대상분야

교토상은, 첨단기술부문, 기초과학부문, 사상·예술부문의 3부문이 있고, 거기에 각 부문은 4개 분야로 나뉘어, 해마다 수상 대상분야가 정해져 있습니다.

수상 대상분야

심사전형에 대하여

교토 상의 전형은, 매년, 각 부문에서 정해진 수상 대상 분야에 있어, 재단에서 지명된 국내·해외의 지식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후보자를 대상으로, 교토상 심사기관에 의해 후보자를 좁혀, 이런 것을 중심으로, 보다 넓은 견지에서 전형을 행합니다. 게다가, 교토상위원회에서, 종합적인 견지에서 교토 상의 이념에 비추어 심사가 행해져, 최종적으로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수상자가 결정됩니다.

심사전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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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행사

관련 행사

교토상 시상식

이나모리 재단에서는, 매년 11월 10일, 가을단풍이 아름다운 교토에서 수상자를 맞이하여 시상식을 개최하기로 정하고, 재단설립 이듬해인, 1985년 11월에 제1회 교토상 시상식을 거행했습니다. 제1회를 기념하여, 20세기에 있어 인류의 문화·학술의 발전에 다대한 공헌을 했다하여 노벨재단에 특별상을 보내, 노벨재단의 이사장 및 심사위원장 전원이 수상을 위해 모두 일본에 오셨습니다. 또한, 노벨재단의 수상을 축하하여, 스웨덴 왕국의 실비아 왕비도 임석하셨습니다.

수상자의 천황 알현

1990년부터 2003년까지 14년간, 수상자는 황궁을 방문해 찾아뵈어, 천황·황후 폐하를 알현했습니다.

교토상 위크

수상자의 방일에 맞춰, 시상식 전후 1주일을 교토상 위크로 해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시상식에 앞서, 9일에는, 교토부·교토시·이나모리 재단 공동주최 환영 리셉션, 10일의 시상식과 만찬회, 11일에는 수상자가 자신의 인생관·세계관을 시민들이 알기 쉽게 설명하는 기념강연회, 12일에는, 부문마다 수상자의 실적에 관련된 전문가나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을 개최, 거기에 초·중학생, 고교생, 대학생을 각각 대상으로 한 청소년 육성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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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의 전개

해외로의 전개

교토상 심포지엄의 개최

교토상 시상식에 출석해서 감명을 받은 샌디에이고 대학 앨리스·헤이즈 학장(당시)의 제안으로, 2002년부터는, 샌디에이고에서 교토상 심포지엄을 개시했습니다. 이후,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 포인트·로마·나자렌대학이 참가하여, 4개 학교 공동주최로, 매년 봄에 수상자를 맞이하여 강연회, 현지 커뮤니티 주최 자선만찬회(Gala)가 개최되어, 지금은 샌디에이고 시 전체에서의 일대 이벤트로 되고 있습니다.

Kyoto Prize at Oxford의 개최

이나모리 재단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은, 서로의 가치관과 철학을 공유하여, 2016년에 파트너십을 체결. 이듬해, 동대학 블라바트닉 공공정책대학원에서 Kyoto Prize Oxford가 시작되었습니다. 매년 5월에 해당 연도 수상자를 영국에 초빙하여, 공개 강연이나 패널토론 등 지적 자극을 주는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제1회에는 이나모리 이사장이 「욕망의 문명에서 이타적 문명으로」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행하고, 동대학 명예총장 크리스토퍼·패튼 경과 「Inamori Forum」 명판 제막식을 거행했습니다.

선의의 연쇄

교토 상의 상금 용도에 대해서 이나모리는, 「연구에만 전념한 인생을 보내 온 분들을 위로하기 위해 드린 것이므로, 상금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 사용해 주셨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만, 수상자 중에는 후진 육성이나 연구기관의 연구를 위해 기부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안제이·바이다 씨 (제3회 정신과학·표현예술 부문)

상금 전액을 사용하여, 「교토-크라쿠프 기금」을 설립, 폴란드에 일본미술센터를 건설.

다니엘·잔센 박사(제13회 기초과학 부문)

상금 전액을 사용하여, 열대림 보전을 위한 기금을 설치.

아카사키 이사무 박사(제25회 첨단기술 부문)

교토 시립 사이쿄 고등학교에 LED 모뉴먼트 「청색 물방울」을 기증. 그 밖에도, 나고야 대학과 메이조 대학에 장학금, 응용물리학회와 일본 결정성장학회에도 기부를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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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재단의 사업

이나모리 재단의 사업

젊은 연구자를 지원

젊은 연구자에게 될수 있는 한 속박이 없는 형태로 자금을 제공해, 독창적이고 장래성 있는 연구활동을 자유롭게 해 주기 바랍니다

연구 조성금제도의 설립 1985년

이나모리는 젊었을 때, 자금부족에 시달리며 연구를 계속한 경험에서, 젊은 연구자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본 제도를 설치했습니다. 1985년에 제1회 증정식을 거행하고, 이후 매년 50명 정도에게, 1명당 100만엔의 연구 조성금을 증정하고 있습니다. 이나모리는, 「장래에, 이 중에서 교토상 수상자가 나오면 좋겠다」라고 바랬는데, 2004년의 조성금 수급자인 야마나카 신야 박사가 2010년의 교토상 첨단기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세이와 스콜라스 소사이어티 발족 1997년

「세이와 스콜라스 소사이어티」는, 조성금 수급자의 상호 교류와 친목을 위해 발족했습니다. 이나모리는 발족에 즈음하여,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각 분야에서 보다 전문화가 나아가는 한편, 빅사이언스로서 여러가지 분야의 연구자들의 지식을 결집시키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이후, 이 교류를 통해서 쌓아 올릴수 있는 사색과 논의에 촉발되어, 하나의 사념이 생겨나, 큰 에너지의 물결이 되어 주위의 공명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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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육성

리더의 육성

역사를 돌이켜보면, 국가건, 기업이건, 모든 집단의 성쇠는 그 리더가 운명을 쥐고 있습니다

「미일 리더십회의」개최 1999년, 2001년

리더 본연의 자세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던 이나모리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데이비드 앱샤이어 소장(당시)은, 미일 정재계의 지식인과 함께, 양국에서 「미일 리더십 회의」를 개최하고, 리더의 중요성에 대해서 논의를 거듭했습니다.

「앱샤이어·이나모리 리더십 아카데미」의 설립 지원과 이나모리 펠로의 파견 2002년

이나모리 재단은 미국의 CSIS에 기부를 하고, 정재계 등의 젊은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기관 「앱샤이어·이나모리 리더십 아카데미(AILA)」를 공동으로 설립했습니다. 거기에, 일본에서 매년 3명을 「이나모리 펠로」로서 파견하는 등, 국제감각이 뛰어나고, 창조성이 풍부하며, 훌륭한 인격을 몸에 지닌, 세계에서 통용되는 참된 리더의 육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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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 탐구

윤리의 탐구

인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양심에 의해 인도되는 새로운 윤리를, 전 세계에 호소하고 싶습니다

「윤리와 예지를 위한 이나모리 국제센터」 설립 지원 2005년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은, 윤리에 중점을 둔 교육·연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교세라가 동대학에 교수직을 두었던 관계로, 이나모리는 2002년에 「기업윤리와 리더십」이라는 테마로 강연을 행하였습니다. 그 후, 동대학이 「윤리와 예지를 위한 이나모리 국제센터」 설립을 계획, 이나모리 재단에서 지원 기부를 행하여, 2007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이나모리 윤리상」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이 주최하는 「이나모리 윤리상」은, 이나모리 재단의 기부를 기금으로 하여 설립된, 윤리 연구와 활동을 통해서 인류사회의 향상에 다대한 공헌을 하고, 모범적인 리더십을 실천한 개인에게 수여되는 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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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심포지엄의 개최

포럼·심포지엄의 개최

CSIS 교토 포럼의 개최

이나모리 재단의 사회계발 활동으로서, CISI와 공동주최로 세계가 직면한 정치문제를 테마로, 포럼을 개최하였습니다. 이것은 앞으로의 국제관계의 자세 등에 대해서, CSIS간부·연구자와 미일 지식인들이 강연이나 토론을 통해서, 널리 일반시민을 계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독일연방공화국 메르켈 수상 방일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 2007년

앙겔라·메르켈 수상의 방일시에, 마이니치 신문사와 공동주최로, 수상에 의한 강연과 환경문제에 관한 심포지엄을 실시하여, 많은 시민이 참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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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지원

교육지원

청소년육성 프로그램의 실시

교토상 수상자의 방일을 계기로, 젊은 사람들이 수상자로부터 직접 지적 자극을 받아, 과학으로 대한 흥미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나 세계의 미래를 생각할 기회가 될 것을 기대하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과학이나 예술의 훌륭함, 소중함을 수상자가 알기 쉽게 말해 주는 키즈 이벤트, 고교생을 대상으로 과학의 즐거움과 심오함을 말하는 고교 포럼, 대학생과 전문학교생이 다양한 테마를 바탕으로 수상자와 직접 의견교환을 하는 학생 포럼 등, 세계의 지성을 대표하는 교토상 수상자와,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와의 적극적인 교류의 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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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원

학술지원

교토대학에 「이나모리 재단 기념관」을 기증 2008년

21세기의 새로운 지식의 거점을 확립하고 싶다는 교토대학의 제의를 받아, 교토대학에 「이나모리 재단 기념관」을 기증했습니다. 관내에는 대학원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연구과, 마음의 미래 연구센터, 이나모리 기념홀 등에 더해, 「교토상 라이브러리」가 병설되어 있습니다.

규슈대학에 「이나모리 재단 기념관」 기증 2009년

대학 창립 100주년을 계기로, 「지식의 신세기를 개척」하는 새로운 교육연구거점을 구축하고 싶다는 규슈대학의 취지에 찬성하여, 이토 캠퍼스 내에 「이나모리 재단 기념관」을 기증했습니다. 관내에는 「이나모리 프런티어 연구센터」와 「교토상 라이브러리」가 병설되어 있습니다.

오사카대학에 기부 강좌 설치 2012년

오사카대학 창립 80주년에 있어서, 대학원 국제공공정책 연구과에 기부 강좌 「글로벌적인 공공윤리와 소셜 이노베이션」을 설치했습니다. 본 강좌에서는 국제협력 활동에 있어서의 과제나,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을 향해 실천하는 인재가 가져야 할 책임감과 윤리관에 대해서 규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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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와주쿠

세이와주쿠에 대하여

세이와주쿠에 대하여

세이와주쿠는, 1983년에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교토의 젊은 경영자들로부터 「어떤 식으로 경영을 해야 할지에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요청을 계기로 시작된 자주적인 경영 공부모임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를 지탱해 주는 중소기업 경영자가 훌륭한 경영을 하는 것으로, 지역 사회, 나아가서는 나라까지도 지탱한다는 신념 하에, 진지하게 배우는 수강생과 이나모리 명예회장의 절차탁마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마음을 고양하고, 회사 실적을 늘려 종업원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경영자의 사명이다」라고 하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세이와주쿠 활동에 무보수로 임하였습니다.
전국적 전개 구상에 의해 각지로 확대, 2019년 말 해산 시에는 국내 56개 지부, 해외 48개 지부, 수강생 수도 약 15,000명을 헤아릴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주요한 활동으로서, 숙장예회, 세계대회, 국내 및 해외투어가 개최되어, 더욱이 각지의 지부가 각자 개최하는 자주예회로 배움에 힘쓰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이나모리 명예회장의 강연을 비롯한 경영자의 귀중한 체험담을 담은 기관지 「세이와주쿠」가 발간되어, 배움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교재가 되었습니다.

2003년부터 각지의 수강생이 일반시민에게도 이나모리 명예회장의 말씀을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시민 포럼」은, 세이와주쿠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역할의 폭을 더욱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9년 말, 세이와주쿠는, 이나모리 명예회장의 고령과 「세이와주쿠는 한세대에 한한다」는 신념에 따라, 애석하지만 폐교하게 되었습니다. 36년에 걸쳐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전해 주신 「이타행의 마음」 「인간으로서 무엇이 올바른가」라는 사고 방식, 국가를 초월하여 널리 퍼져, 경영자의 판단 기준으로서 기업의 발전에 기여함과 함께,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공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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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와주쿠의 탄생

세이와주쿠

교토의 젊은 경영자들로부터, 같은 경영에 종사하며 고민해 온 인간으로서 어떻게 경영해야만 할지를 묻고 싶다는 요망이 있었습니다.

거듭 부탁받는 동안에 저 자신도 사회의 도움으로 오늘이 있다는 것을 깨닫음과 함께, 다소나마 그것에 보답하고자 볼런티어로서 저의 경험과 경영이념을 전해 가는 것은, 젊은 경영자들의 참고가 되고, 나아가 일본 경제, 세계 경제에 있어도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의 경영이념, 인생관을 공부하는 자발적인 젊은 경영자의 모임 『세이와주쿠』가 탄생한 것입니다.

젊은 경영자에게는 대표이사로서 가져야 할 「경영철학」만은 전하고 싶습니다.
대표이사의 그릇이 커지게 되면, 회사도 저절로 발전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세이와주쿠」 전국조직화 취지서

기업경영에 종사하는 사람은 그 기업의 규모에 관계없이 사원을 포함한 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바라기 때문에 매일 최선을 다해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단 기업을 일으키거나 계승하여 그 정점에 섰을 때부터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자신을 포함한 전 종업원이 받을 비참함을 상상하여 밤낮으로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불안과 초조함을 안고 필사적으로 경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후 45년을 지나 지금까지 순조롭게 성장 발전을 계속해 온 일본 및 세계 경제도 1990년대 초부터 드디어 구조적인 전환기에 들어섰습니다. 20세기 말을 목전에 두고 세계는 파란과 격동의 시대에 돌입하려고 하는 만큼 경영자로서는 더 한층 정신을 차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4년간 세라믹 연구자로서 지낸 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2년 전에 28명으로 교세라 주식회사를 일으킨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업경영에 심혈을 기울여서 왔습니다. 현재 교세라는 국내·해외를 합쳐서 종업원 총수 26,000명, 연간 총매출 5,000억엔, 전기통신사업을 포함한 다이니덴덴 주식회사는 종업원 1,500명, 연간 매출 1,500억엔으로까지 성장해 왔습니다.

저는 창업 당시부터 기업경영은 그 경영자가 가진 철학, 마음, 이념, 신념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여, 경영자로서 자신의 인격을 닦고 마음을 높여, 보다 높은 사상을 갖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기업경영도 인생의 발자취도 모두 그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의 과거 경험으로 보아 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으로부터 7, 8년 전에 교토의 젊은 경영자들로부터 같은 경영에 종사하며 고민해 온 인간으로서 어떻게 경영을 해야만 할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는 요청이 있어, 거듭 부탁받는 동안에 저 자신도 교토라는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오늘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다소나마 그 답례로서의 볼런티어로 제 경험을 전해 가는 것은 젊은 경영자 분들의 참고도 되고, 나아가서 일본 경제, 세계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교토에 있어서 경영이념, 인생관을 공부하는 자발적인 젊은 경영자의 모임 「세이와주쿠」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주쿠의 분교를 만들기 시작하여 오사카, 고베, 시가, 가고시마, 도야마, 도쿄, 계 7개소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부터 젊은 수강생 여러분들이 진지하게 제 이야기를 듣고, 마치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하고 실천하여 실제 경영에서 큰 효과를 올리고 있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대단히 기쁘게 생각해 왔는데, 최근 들어 많은 수강생들로부터 자기들이 숙장의 경해를 접해 공부할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전국에는 더 많은 젊은 경영자들이 있어 그 사람들도 똑같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기업 경영자가 더욱 훌륭한 경영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제 자신 시간의 제약은 있습니다만, 내년에는 환갑을 맞이하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미흡하나마 제 경영이념, 인생관을 이야기함으로써 많은 젊은 경영자 여러분들의 인격과 마음을 높여, 그 결과 각각의 기업이 번영하고 종업원이 행복하며, 나아가서 세계 인류가 평화롭고 행복해지는 경영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길 생각하며, 여기에 수강생의 추천도 있어 젊은 경영자 5,000명에 의한 「전국 세이와주쿠 조직화」를 결심하게 된 바입니다.

경영의 요체는 먼저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경영자가 가진 마음에 있습니다. 경영의 진수를 깨우쳐 경영자의 마음이 바뀌면 반드시 경영은 순조롭게 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인덕을 높여, 기업의 안정과 융성을 희망하시는 분의 모집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1991년 세이와주쿠 숙장 이나모리 가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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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와주쿠의 확대

세이와주쿠의 확대

혼자 살아가는 것이 힘든 세상에서, 설령 중소기업일지라도, 종업원과 그 가족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경영자는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중책을 떠맡은 경영자들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고민을 털어놓아, 서로 격려하며, 탐구하는 장으로서, 세이와주쿠 활동 연대가 확산되어 갔습니다.

수강생 수의 추이

1991년에 「100개소 5000명 구상」을 내세우고, 전국조직화가 전개되었습니다. 2018년에는 100개소, 수강생 수가 13,610명에 달했습니다. 해외에서는, 1993년에 세이와주쿠 브라질이 탄생하고, 그 후에도 미국, 중국 등 세계 각지에 세이와주쿠는 전개되고 있어, 국경을 초월하여 차세대 경영자를 육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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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장 예회

숙장 예회

숙장 강화

숙장 강화에서는, 「회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경영자는 어떠한 사고를 가져야 하는가?」 등 이나모리가 자신의 경영을 통해 체득한 경영철학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경영문답·경영체험 발표

숙장 강화와 더불어 「경영문답」이라고 불리는 경영지도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수강생이 직면해 있는 경영상의 절실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발표하여, 이나모리 자신이 전신전령을 기울여 대답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영체험 발표」에서는, 수강생이 자신의 경영체험과 거기서 터득한 깨달음을 발표합니다. 회장의 수강생들은, 발표자의 이야기와 이나모리의 코멘트를 들음으로써 그 체험을 공유하게 됩니다.

간담회·투어

숙장 예회 후에는, 간담회가 열려, 전국에 있는 수강생들과의 만남과 교류의 장을 갖습니다. 또한, 숙장과 함께 국내 투어나 해외 분교를 방문하는 해외 투어가 매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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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와주쿠 세계대회/자주 예회

세이와주쿠 세계대회/자주 예회

세이와주쿠 세계대회

1992년부터 시작된 세이와주쿠 전국대회는, 2011년부터 「세이와주쿠 세계대회」라고 명칭을 바꾸어, 1년에 1번, 이틀간에 걸쳐 개최됩니다. 경영을 진지하게 배우려는 세이와주쿠 수강생들이, 국내외로부터 다수 참가하여, 회장 전체가 열기와 일체감에 휩싸입니다.

자주 예회

각 지부에서 자주적으로 실시되는 공부모임입니다. 수강생들의 경영체험 발표, 이나모리 숙장의 서적 윤독회, DVD 시청 등, 각각의 지부에서 특색있는 공부모임을 개최하여, 수강생들이 연찬을 쌓고 있습니다.

「경영의 요체는 경영자가 가진 마음에 있다.
경영의 진수를 깨우쳐,
경영자의 마음이 바뀌면,
경영은 반드시 순조롭게 나아간다.
자기 자신의 인덕을 높여,
기업의 안정과 융성을 원하는,
전국의 경영자들이여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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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와주쿠의 발자취

세이와주쿠의 발자취

1980년(48세)이나모리의 교토 청년회의소에서의 강연을 계기로 교토의 젊은 경영자가 이나모리를 둘러싸고 경영에 대한 사고방식을 배우는 공부모임을 개시
1983년(51세)이나모리를 숙장으로 하는 「세이유주쿠」 발족(회원 25명)
1986년(54세)효고, 오사카, 시가의 경영자가 세이유주쿠에 출석하여, 세이와주쿠 전국 전개의 발판이 된다
1989년(57세)「세이유주쿠」을 「세이와주쿠」로 명칭 변경
세이와주쿠 본부 사무국을 설치
1990년(58세)간사연락회에서, 전국조직화 방침결정
숙장 예회에서 수강생의 「경영체험 발표」를 개시
1991년(59세)이나모리가 「세이와주쿠 전국조직화 취지서」를 작성 (100개소 5,000명 구상)
1992년(60세)기관지 [세이와주쿠] 창간
제1회 세이와주쿠 전국대회 개최
숙장 예회에서 「경영문답」을 개시
1993년(61세)첫 해외판 세이와주쿠 「브라질」 개교
1997년(65세)세이와주쿠 50개소를 돌파
1999년(67세)중국 톈진에서 일본 경영철학연구회 발족
2002년(70세)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시민 포럼」을 돗토리현 요나고시에서 처음 개최
2003년(71세)전국간사회에서 수강생의 증원을 적극화할 방침을 결정
2004년(72세)미국 최초의 세이와주쿠 「USA」(현 세이와주쿠 「로스앤젤레스」) 개교
2007년(75세)중국 최초의 세이와주쿠 「우시」 개교
2008년(76세)수강생 수가 5,000명을 돌파
2010년(78세)이나모리의 일본항공 회장 취임에 따라, 수강생이 JAL 응원단을 결성
이나모리 가즈오(베이징) 관리고문 유한공사(중국에서의 세이와주쿠 통괄 조직) 개설
2011년(79세)세이와주쿠 전국대회를 세이와주쿠 세계대회로 명칭 변경
2012년(80세)수강생 수가 8,000명을 돌파
2015년(83세)수강생 수가 10,000명을 돌파
2016년(84세)한국 최초의 세이와주쿠 「한국」 개교
2017년(85세)싱가포르 발 세이와주쿠 「싱가포르」 개교
2018년(86세)세이와주쿠 100개소에 도달, 2019년을 마지막으로 활동 종료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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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방면에 걸친 사회활동

인재육성·학술지원

인재육성·학술지원

이나모리 교세라 서부개발장학기금 설립

이나모리와 교세라는, 중국 서부지구에서,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이 우수하지만,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는 대학생을 지원하는 「이나모리 교세라 서부개발장학기금」을 2001년에 설립했습니다.

매년, 중국의 12개 대학에서 배우는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인재육성을 통해 동 지구의 발전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가고시마 대학 이나모리 아카데미 설립

2008년 4월, 가고시마에서 열의 넘치는 리더가 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나모리는 모교인 가고시마 대학에 「이나모리 아카데미」를 발족시켰습니다. 동 아카데미에서는, 인간력의 종합적 육성을 목표로, 윤리와 철학에 관한 강의를 학생에게 제공해, 자신의 이념과 비전을 모색하는 리더 육성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교토 3대학의 교양교육 공동화 시설 「이나모리 기념회관」

교토부의 교토부립 의과대학, 교토부립 대학, 국립 교토공예 섬유대학의 교양교육 공동화 계획에 대하여, 이나모리는 「3대학의 젊은 학생들이 인간성을 양성하는 교양을 널리 익히며, 서로 교류하는 것은 매우 의의가 있다」며 그 취지에 찬성하고, 지원을 했습니다. 2014년 9월에 준공된 교양교육 공동화 시설은, 「이나모리 기념회관」이라고 명명되어, 17개 교실, 실험실, 자주실, 레스토랑 등을 갖추고, 이나모리의 발자취와 사상을 소개하는 「이나모리 기념 전시실」도 일반 공개되고 있습니다.

가고시마대학에 교세라 주식 100만주를 기증

2017년, 가고시마 대학에, 이나모리가 가진 교세라 주식 100만주를 기증했습니다.
11월, 동 대학에서 수납식이 열려, 이나모리는 식전에서, 「저를 육성해 준 모교 가고시마 대학의 교수님들, 그리고 장래가 기대되는 학생들을 위해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가고시마 대학에서는 기금을 새로이 마련하여, 학생의 해외유학 지원과 연구자 육성 등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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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육성·학술지원

인재육성·학술지원

미일 21세기 위원회의 개최

미일 21세기 위원회는, 미일관계의 현재와 장래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 발족된 위원회입니다. 일본 측은 미야자와 키이치 전 총리(명예위원장), 사카이야 다이치 씨 (위원장) 등이 이름을 올리고, 미국 측은,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명예위원장), 윌리엄 E 블록 전 USTR대표(위원장) 등이 참가했습니다. 1996년 6월부터 1998년 5월까지 2년에 걸쳐, 총 4회의 위원회가 개최되어 미일을 대표하는 25명의 논객이, 미일 양국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 건설적인 논의를 하고, 「미일 21세기 선언」을 양국 수뇌에게 제언했습니다.

시민 포럼

「일반시민들에게도 이나모리 숙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싶다」. 그러한 세이와주쿠 수강생들의 바램을 들은 이나모리는,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수가 있으면」이라며 찬성하고, 전국 각지에서 볼런티어 강연 「시민 포럼」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시민 포럼에서, 이나모리는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인간은 계속해서 마음을 닦아감으로써, 훌륭한 인생을 보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의 세이와주쿠가 주최하고 있는 시민 포럼은,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에서는 미국과 브라질에서도 개최되고 있습니다. 이미 회수는 56회, 전체 참가자 수는 95,831명을 헤아립니다 (2014년 12월 말 현재). 참가한 많은 남녀노소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반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토 다이와의 집 개설

작금 증가하는 아동학대나 육아 포기로, 어쩔수 없이 가족들과 헤어져 생활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이 생활하는 시설로서, 2004년에 이나모리는 사재를 털어, 교토부 남부 세이카초에 아동양호시설·유아원 「교토 다이와의 집」을 창설했습니다.

시설의 건물은, 남유럽풍의 밝은 디자인을 도입했고, 아동·학생 계 60명, 영유아 20명이 입소할 수 있습니다. 아동양호동의 내부는 10명 단위로 생활할 수 있는 6개의 가정적인 생활 유닛으로 나뉘고, 초중학생은 매주 5일의 구몬식 학습을 받을 수 있는 등, 자립 지원과 가정복귀를 위한 치밀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3년에는 공익재단법인 이나모리 복지재단을 설립하여, 교토부내 아동양호시설을 퇴소하는 어린이들이 사회인으로서 자립된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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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헌

지역공헌

가고시마 시에 문화공원 내 모뉴먼트 등을 기증

1980년 가고시마 시에서 「시민문화 홀 건설에 자금 원조를 바란다」는 의뢰를 받은 이나모리는, 가난한 학생 시절에 가고시마시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경험을 상기하고, 고향에 보은하는 마음을 담아 기부를 했습니다.

그 기부금은, 시민문화 홀 문화공원 내 모뉴먼트 건립뿐만 아니라, 가고시마 시 사랑의 복지기금 창설과 이나모리의 모교인 교쿠류 고등학교 창립 40주년 때의 도서기증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가고시마 대학 이나모리 회관을 기증 ”

1994년, 모교 가고시마 대학 공학부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것을 기념하여, 이나모리는 대학의 학술교류와 지역의 문화교류에 널리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나모리 회관을 기증했습니다. 안도 다다오 씨가 설계한 이나모리 회관은, 계란형의 홀로 되어 있어, 「새로운 창조의 생명이 머무는 소우주를 이미지하고, 가고시마에서, 세계로 다음 시대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나래를 펼쳐 비상한다」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교토대학 시란회관 이나모리 홀을 기증

교토대학 의학부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고, 1999년에 사회와의 연계와 의학교육의 발전을 목적으로 한 회관이 건설되었습니다. 이 회관은 「시란회관」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만, 그 건설에 즈음하여 이나모리는 교토대학에 기부를 하여, 동 회관 2층의 홀이 「이나모리 홀」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이 홀은 25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학회, 강연회, 심포지엄 개최 등에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엔푸쿠지 본당 및 고리의 개축

이나모리가 득도한 임제종 묘신지파 엔푸쿠지는 임제종 최초의 전문도장으로서 2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오랜 풍설로 인해 본당의 노후화가 두드러져, 이나모리와 교세라는 재건을 위한 기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본당과 고리(승려의 거처)이 개축되어, 2003년에는 성대한 낙경법요가 치러졌습니다. 서원에는, 저명한 일본화가, 이토 시코 씨에게 제작을 의뢰한 후스마에(장벽화)가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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