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세라믹 다층 패키지
1969년, 교세라는 미국 페어차일드사로부터 LSI용 세라믹 다층 패키지(하이덴시티 패키지: HDP)의 시제품 제작 의뢰를 받았습니다. 이는 두 장의 세라믹 기판을 겹쳐 92개의 비아홀로 연결하는, 당시로서는 매우 첨단적인 기술이었습니다. 이미 기초 기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나모리는 「3개월 안에 만들 수 있다」라고 약속하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와 같은 무모하다고도 보일 약속을 한 배경에는 이나모리가 이전부터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사를 방문하여 IC를 보호하는 새로운 패키지의 시제품 제작 의뢰를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새로운 세라믹스 기술이 막 싹트기 시작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그것이 거대한 나무로 성장할 것을 직감한 이나모리는 귀국하자마자 테이프 성형법과 적층법의 개발에 즉시 착수했습니다. 이러한 선견지명과 사전 준비가 짧은 납기라는 어려운 과제를 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이덴시티(HD) 패키지】
그러나 세계 최초의 세라믹 다층 패키지 개발은 극도의 난관의 연속이었습니다. 테이프의 강도와 치수 안정성, 비아홀 가공, 미세 회로 인쇄, 적층 등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설비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해외에서 기계를 조달하는 등, 이나모리와 개발팀은 밤낮을 아껴가며 도전에 임했고 마침내 시제품을 완성했습니다. 약속한 대로 20개를 납품했고 페어차일드사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종적으로 HDP는 설계 변경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개발 과정에서 테이프 성형, 적층, 동시 소성 등 많은 기술적 도약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기술들은 이후 아메리칸 마이크로시스템즈(AMI)사와 인텔사로부터 대량 수주를 얻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초기 세라믹 다층 패키지】
같은 해 8월, AMI사로부터 계산기용 IC 패키지 100만개라는 대량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이나모리는 설비 투자에 신중한 편이었으나 반도체의 미래성을 확신하고 세전 이익의 30~40%에 해당하는 대규모 투자를 즉시 결단했습니다. 미국 제조업체들이 미래성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해 주저하는 가운데, 교세라는 신공장 건설과 생산 라인 정비를 결단하였고 이는 세계적인 파인세라믹 제조업체로 도약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양산화도 난항을 겪었고, 설비 부족과 낮은 수율로 인해 가고시마 공장(현 가고시마 센다이 공장)은 적자가 계속되었습니다. 이나모리는 현장을 자주 찾아 직원들과 간부들과 함께 개선을 위해 동분서주하였습니다. 훗날 경영진이 되는 구성원들 역시 이 어려움을 함께 지탱했습니다. 1970년 말에는 수율이 개선되었고 1971년 4월에는 월 100만개 생산 체제를 실현했습니다. 불황 속에서도 계산기 수요의 호재를 받아 교세라의 실적은 성장했습니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결단력과 선견지명, 현장 중심의 경영과 끈질긴 자세가 교세라를 세계 유수의 반도체 패키지 제조업체로 이끌었습니다. 이 경험은 교세라의 성장과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떠받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